웅장한데 소박하고, 현대적인데 전통적인 — 니혼바시

웅장한데 소박하고, 현대적인데 전통적인 — 니혼바시

1970년 1월 1일 (목)

도쿄에서 15년 살다 보면, 관광지는 아닌데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동네들이 있다.

니혼바시(日本橋)가 딱 그렇다.

긴자 옆에 있고, 도쿄역에서 걸어갈 수 있고, 미쓰코시 백화점 본점이 있는 동네.

그 정도만 알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런데 사실 이곳은 그 이름처럼 일본 전체의 도로가 시작되는 기점이고, 400년이 넘는 상업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흥미로운 곳이다.

특히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조화된 근대 일본의 건축 양식들을 보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

오늘은 의외로 관광객들이 잘 안 가는 일본의 중심, ‘니혼바시’를 제대로 소개해보려 한다.


​‘日本橋’라는 이름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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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江戸東京博物館 / AI 업스케일링

한자를 그대로 읽으면 ‘일본의 다리(日本橋)’ 다.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지금의 도쿄)에 막부를 열면서 일본 전국으로 뻗어나가는 5개의 대로(五街道) — 도카이도, 나카센도, 닛코 가도, 오슈 가도, 고슈 가도의 공식 기점으로 지정한 것이 바로 이 ‘니혼바시’.

조선시대로 치면 한양 4대 문 같은 개념인데, 일본 전국 방방곡곡의 거리를 재는 기준이 바로 이 다리 위의 한 점이었다.

지금도 다리 한가운데에 ‘일본 도로원표(日本国道路元標)’라는 작은 표지가 박혀 있는데, 일본의 주요 국도가 모두 이곳을 기점으로 하며, 지금도 도쿄에서 각 도시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준이 된다.

중요한 역사 기록이지만, 아쉽게도 기념사진을 찍기엔 표지의 크기와 각도가 조금 애매함.


에도의 경제 수도, 니혼바시

에도 시대에 다리가 놓이고 나서 이 동네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수로(水路)가 발달했던 시대에, 니혼바시강(日本橋川)은 전국에서 물자가 집결하는 동맥이 되어, 북쪽의 쌀, 서쪽의 목재, 바다에서 잡아 올린 생선까지, 모든 게 이 강을 타고 들어왔다.

특히 지금의 츠키지 시장, 더 나아가 최근 이사한 토요스 시장의 전신이 되는 대규모 어시장이 바로 이곳 니혼바시에 있었다.

그리고 그 왁자지껄한 시장 옆에 일본 최초의 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바로 미쓰이 가문의 포목점 ‘에치고야(越後屋)’인데, 이게 나중에 미쓰코시 백화점의 전신이 된다. 지금도 그 자리, 그 건물(리모델링은 했지만)에서 350년 넘게 영업 중이다.

한 가지 더. 이 일대에는 약장사도 엄청나게 많았다.

막부는 에도 개부 초기부터 전국의 약종상(薬種商)을 니혼바시 혼초(本町) 3초메 일대에 집중 배치했다고 하는데, 쌀 상인은 쌀 상인 구역, 직물 상인은 직물 상인 구역, 업종별로 모아 관리하는 ‘동직집주(同職集住)’ 정책의 일환이었다.

三丁目 匂わぬ店は 三、四軒

당시 이곳의 풍경을 읊은 川柳(센류, 일본 단시)에서도 거리 전체가 한약재 냄새로 진동했다고 묘사할 정도. 건강 마니아로 유명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향으로 에도 시대 내내 의학과 약학이 장려되었고, 건강보험이 없던 시절 서민들은 의사 대신 스스로 한약을 사서 먹는 셀프 메디케이션 문화가 일상이었다.

이 약종상들은 메이지 시대에 서양 의약품을 들여오고, 나중엔 직접 제약회사로 변신했다.

지금 니혼바시 혼초에 일본 최대 제약사 다케다약품공업(武田薬品工業)의 글로벌 본사가 들어서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400년을 이어온 ‘약의 거리’ 계보를 그대로 잇고 있는 것이다.


왜 대형 은행과 증권사가 다 여기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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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国立国会図書館 / AI 업스케일링 및 채색

니혼바시를 걷다 보면 금융 관련 간판이 유독 많다는 걸 눈치채게 된다.

일본은행 본점, 노무라 증권, 다이와 증권… 그냥 모인 게 아니다.

에도 시대, 이 일대에는 료가에쇼(両替商) 라 불리는 환전상들이 대거 집결했다고 한다.

전국의 물자가 모이는 곳이니 당연히 돈도 모였고, 쌀, 비단, 약재를 거래하는 상인들 사이에서 신용과 환전을 담당하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특히 미쓰이 가문은 에치고야(미쓰코시의 전신)로 포목 장사를 하면서 동시에 환전업도 겸했는데, 이것이 훗날 미쓰이 은행(지금의 SMBC)의 출발이 된다.

1878년: 도쿄 증권 거래소의 전신인 ‘도쿄 주식 거래소(東京株式取引所)’가 가부토초(兜町)에 설립

1882년: 일본은행(日本銀行) 본점이 니혼바시에 개설

주요 은행과 증권사들이 일본은행 주변에 본점을 두기 시작

가부토초(兜町)는 ‘일본의 월스트리트’라 불리는 곳으로, 니혼바시역 바로 옆에 있는데, 도쿄증권거래소(현 JPX)를 비롯해 노무라 증권, 다이와 증권 등 주요 증권사 본점이 지금도 이 일대에 몰려 있다.


다리를 보면 역사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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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직접 촬영 / AI 수정

지금 니혼바시에 가면 볼 수 있는 석조 다리는 1911년에 완공된 20대째 다리다.

맨 처음엔 당연히 나무다리였고, 화재로 소실되고 재건되기를 반복하다가, 메이지 시대에 일본이 “이제 우리도 근대 국가요!”를 외치며 화강암으로 된 유럽풍 아치교를 올린 것.

길이 약 49m, 폭 약 27m인 다리 난간 양쪽에 세워진 조각상을 자세히 보면 두 종류가 있다.

기린(麒麟)상: 상상 속의 동물로, 사방팔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여정과 비상을 상징.

사자(獅子)상: 도시를 지키는 수호의 상징.

1999년에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둔 일본 정부는 이 아름다운 다리 위에 부랴부랴 수도고속도로를 놓았다. 빠른 공사를 위해 이미 있던 강 위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좋은 발상이었지만, 그 결과 니혼바시 위로 고속도로가 지나가게 되었다.

도로 폭이 넓고 건물도 웅장한 니혼바시는 도쿄 치고는 꽤 개방적인 거리인데, 유독 랜드마크인 다리 주변만 고속도로 때문에 답답한 느낌이 든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수도고속도로 지하화(地下化)가 2040년에 마무리된다고 하니, 하늘이 다시 열리면 이곳이 얼마나 달라질지 기대된다.


지리적 위치 & 가는 법

관광지로 유명한 긴자, 도쿄역과 워낙 가깝기 때문에 도쿄 여행 중 자연스럽게 동선에 포함된다.

니혼바시역: 긴자선·도자이선·아사쿠사선 이용

미쓰코시마에역: 한조몬선·긴자선 이용

도쿄역: 니혼바시 출구에서 도보 약 10분

위치 기준으로는 긴자 바로 위, 마루노우치 옆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떻게 가는지 알았으니, 이제 니혼바시의 관광 명소(?)를 몇 군데 살펴보자.


1. 니혼바시 다리 & 일본 도로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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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직접 촬영 / AI 수정

일단 다리부터 건너자. 전철을 타고 이동했으면 니혼바시 중심부에서 벗어나 살짝 발길을 돌려야 한다.

다리 한가운데 바닥에 동판이 박혀 있는데, 이게 바로 ‘일본 도로원표’.

이곳에서 ‘지금 내가 일본의 기점에 있다’는 사진 한 장 찍으면 된다.

절대로 한국의 한강의 규모를 생각해선 안 된다. 한강은 도심을 가르는 강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에 속하는데, 니혼바시를 따라 흐르는 강은 굳이 비교하자면 청계천 정도의 느낌이다.


2. 미쓰코시 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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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직접 촬영 / AI 수정

일본 최초의 백화점답게 내부가 정말 웅장하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대한 아트리움과 중앙 홀이 펼쳐지는데, 그냥 구경만 해도 충분히 볼거리가 있다.

일본 백화점답게 관광객이 살 물건은 거의 없지만, 에치고야에서 미쓰코시로 이어지는 이 건물의 역사가 350년이 넘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둘러보면 감회가 새롭다.


3. 일본은행 본점

미쓰코시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벨기에 중앙은행을 모델로 1896년에 완공된 신고전주의 건물로, 설계자는 도쿄역도 지은 유명 건축가 타츠노 킹고(辰野金吾).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촬영 무대 중 하나이기도 해서, 드라마 팬이라면 더욱 반가울 장소다.

평일 낮에는 내부 견학(무료, 사전 예약 필요)도 가능한데, 입장하면 금고 안까지 들어갈 수 있고, 은행 내부를 이렇게 구경할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으니 시간 여유가 된다면 신청해 볼 것.

또한, 옆에 있는 만다린 오리엔탈 도쿄를 통하면 은행의 옛 중역실 등을 연회장이나 비즈니스 미팅 장소로 대관도 가능하니, 도쿄에서 격식 있는 이벤트를 열고 싶으면 한 번쯤 고려해 볼 만하다. (대관료가 생각보다 비싸지 않음)


4. 만다린 오리엔탈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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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직접 촬영 / AI 수정

니혼바시 미쓰이 타워 38~41층에 자리한 만다린 오리엔탈 도쿄는, 호텔 투숙객이 아니어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장소다. 특히 고층 라운지와 레스토랑에서 바라보는 도쿄 스카이라인은 시부야나 신주쿠의 전망대와는 결이 다르다. 조용하고, 품격 있고, 어딘지 모르게 니혼바시답다.

화장실은 도쿄 호텔 중 최고다.

그리고 1층에는 ‘센비키야(千疋屋)’가 있는데, 1834년 창업한 일본 최고급 과일 전문점으로, 과일 하나에 수천 엔이 넘는 세계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가끔 SNS에서 보이는 “일본에는 이렇게 비싼 과일이 있다고?”라는 고급 과일 붐을 처음 만든 브랜드.

가격 대비 그 맛을 하냐... 는 개인차이지만, 과일 파르페 등 카페 메뉴는 한 번쯤 즐겨볼 특별한 경험이 된다.


5. COREDO 무로마치(コレド室町)​

전통 상업가에 현대식 쇼핑몰이 들어선 케이스인데, 위화감이 의외로 없다.

1·2·3호점으로 나뉘어 있고, 일본 각지의 유명 맛집과 브랜드들이 모여 있다.

특히 COREDO 무로마치 테라스 안의 ‘에도 코지(江戸小路)’ 는 에도 시대 거리를 모티브로 꾸며져 있어 사진 찍기 좋은 포토 스팟이기도 하다. 날씨가 좋으면 건물 외곽에 있는 카페나 음식점을 이용하면 니혼바시 특유의 감성을 즐길 수 있다.


6. 후쿠토쿠 신사 (福徳神社) & 약조신사 (薬祖神社)​

901년에 창건된 후쿠토쿠 신사는 COREDO 무로마치 3호점 바로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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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해상도 영상을 고해상도로 변환하여 화질을 선명하게 개선하는 기술
출처
데이터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생성되었는지에 대한 이력과 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