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앱스타인과 침묵의 카르텔

제프리 앱스타인과 침묵의 카르텔

1970년 1월 1일 (목)

전 세계적으로 앱스타인 파일이 공개되면서 큰 파장이 일고 있다.

뉴스에서 언뜻 스치는 내용만으로도 지나치게 끔찍한 사건이라, 자세히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외면하고 있었는데, 최근 YouTube에서 우연히 보게 된 영상과 넷플릭스 다큐멘터리(2020년)를 보고 나서, 간단하게나마 몇 자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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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보게 된 YouTube 영상인데, 너무 잘 만드셔서 링크합니다.

SNS와 CCTV, 누구나 카메라를 들고 자유롭게 미디어 활동을 할 수 있는 시대.

우리는 ‘대중 감시’의 시대를 살고 있다. 뉴스는 거리의 범죄를 비추고, 사회는 처벌의 정당성을 외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유독 사회 꼭대기에 선 포식자들에게만큼은, 보이지 않는 방패가 작동해 왔다는 것.

이번 앱스타인 사건은 몇 년 전 일본을 뒤흔든 자니 키타가와 사건, 그리고 영국의 지미 새빌 사건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이 세 사람은 각각 엔터테인먼트의 제왕, 국민적 자선가, 글로벌 엘리트 커넥터라는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있었지만, 공통점이 있다. 수십 년간 조직적인 성범죄를 저질렀고, 그 기간 동안 시스템이 이를 묵인했다는 것이다.

미디어, 사법기관, 권력 네트워크가 유기적으로 얽혀 만들어낸 ‘침묵의 카르텔’ 그 자체였다.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 어떻게 이토록 거대한 악이 수면 아래 숨을 수 있었을까?


자니 키타가와: 동조라는 이름의 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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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중문화의 신화, 자니 키타가와.

그의 성착취 사건은 노엘레 노이만이 말한 ‘침묵의 나선’이 현실에서 얼마나 파괴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자니즈 사무소’가 일본에서 어떤 존재였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한국인의 시각에서는 일개 기획사 사장이 어떻게 그런 절대 권력을 가질 수 있었는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키타가와는 1962년 남성 아이돌 전문 기획사 ‘쟈니즈 사무소(Johnny & Associates)’를 설립했다.

춤추고 노래하는 남성 그룹이라는 콘셉트를 일본에서 개척한 선구자였고, 이후 60년간 SMAP, 아라시, TOKIO 등 국민 그룹을 연이어 배출하며 자니즈는 단순한 기획사를 넘어 일본 대중문화의 인프라가 되었다.

지배력은 압도적이었다. 음악, 드라마, 예능, 뉴스, 스포츠 중계까지—지상파 TV의 거의 모든 시간대에 자니즈 소속이 출연. 타 기획사의 남성 아이돌을 출연시키면 자사 전원을 철회하겠다고 압박했고, 실제로 수많은 남성 아티스트가 음악 방송에서 차단당했다. 방송국에 자니즈를 잃는다는 건 편성표가 무너지고 시청률이 추락하게 된다는 뜻이었다.

여러 차례 잡지사의 고발이 있었지만 번번이 묵살됐고, 업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면서도 누구 하나 나서지 못했다. BBC 보도 직후, 우연한 기회로 일본의 베테랑 방송 작가 분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 역시 같은 말을 했다.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라고.

이 견고한 나선을 깨뜨린 건, 내부의 자정이 아닌 2023년 3월 BBC 다큐멘터리라는 외부 충격이었다.

**BBC 보도 이후, 온라인 뉴스의 보도 반응률은 55.3%에 달한 반면, 일본 주류 방송사의 보도 반응률은 고작 6.7%에 그쳤다.**상업적 유착이 저널리즘을 마비시킨 것이다.


지미 새빌: 자선이라는 가면 뒤의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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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사회가 성자(聖者)로 추앙했던 지미 새빌.

그의 사례는 미디어가 피해자의 고통을 어떻게 ‘소비’하고 ‘상품화’하는지에 대한 섬뜩한 통찰을 제공한다.

새빌은 1990년 기사 작위와 교황청 훈장을 받으며 사회적 무오류성을 획득했다.

이 권위의 갑옷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정신 질환’이나 ‘거짓말’로 치부하게 만드는 강력한 기제가 되었다. 누가 성자의 말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2012년, ITV 다큐멘터리 ‘지미 새빌의 이면(Exposure: The Other Side of Jimmy Savile)’이 방영되고 나서야 비로소 폭로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영국 미디어는 수재나 메니스(Susanna Menis)가 지적한 ‘이상적인 피해자’ 담론을 재생산했다. 미디어는 새빌을 ‘악마화’하고,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정제된 피해자상만을 골라내어, 그들의 고통을 자극적인 콘텐츠로 소비한 것이다.

한 피해자는 폭로 과정을 “압력밥솔 뚜껑을 여는 것 같았다”라고 회상했다.

수십 년간 억눌러온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경험.

하지만 미디어는 그 터져 나오는 순간의 폭발성에만 집중했을 뿐, 본질적인 시스템의 결함은 외면했다.


제프리 앱스타인: 진실과 대중적 불신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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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앱스타인 사건은 부와 네트워크가 사법 시스템의 한계를 어떻게 시험하고, 나아가 조롱하는지를 보여주는 섬뜩한 사례다.

미 법무부(DOJ)가 ‘앱스타인 파일 투명성 법(Epstein Files Transparency Act)’에 따라 공개한 350만 페이지에 달하는 문건은 앱스타인이 구축한 성착취 네트워크의 치밀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2025년과 2026년 초에 걸쳐 공개된 FBI의 내부 문건과 메모는 “엡스틴이 유력 인사들을 위해 조직적인 성매매 고리를 운영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라고 결론지었다.

대중은 여기서 거대한 불신과 마주한다.

350만 페이지의 증거와 ‘증거 부족’이라는 수사 결론 사이의 괴리는, 법무부가 피해자들의 신상 정보는 편집 실수로 노출시키면서도 정작 유력 용의자들의 혐의점은 찾지 못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특히 이번 파일 공개로 드러난 거물급 인사들의 위선은 충격적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경우, 앱스타인이 2011년 이메일에서 그를 “짖지 않은 개”라고 지칭하며, 그가 범죄 사실을 알고도 침묵했거나 깊이 연루되었음을 암시하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또한 FBI 팁 라인에는 트럼프가 성범죄에 가담했다는 미확인 제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으나, 법무부는 이를 “근거 없다”라고 일축했다.

일론 머스크는 과거 앱스타인을 경멸했다고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2012년 이메일을 통해 “당신의 섬에서 가장 핫한 파티는 언제냐”라고 묻고 방문 일정을 조율했던 사실이 드러나 도덕적 해명에 치명상을 입었다.

자선가로서 선한 이미지가 굳어진 빌 게이츠조차 리처드 브랜슨이 앱스타인에게 “이미지를 세탁하려면 빌 게이츠를 이용하라”라고 조언한 이메일이 발견되는 등, 그들의 자선 활동 뒤에 숨겨진 불투명한 유착 관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앱스타인의 오랜 연인이자 핵심 공모자인 길레인 맥스웰에게 내려진 20년형은 언뜻 정의의 실현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감옥에서도 “트럼프와 클린턴은 잘못이 없다”라고 진술하며 감형을 노리는 듯한 태도를 보였고, 이는 그녀의 처벌이 거물급 인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꼬리 자르기’라는 의구심을 더욱 굳히게 한다.

빌 클린턴 부부가 의회 모독죄 압박을 받고서야 뒤늦게 증언대에 서기로 합의한 점, 그리고 수많은 유력 정치인과 억만장자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수사 기관이 내놓은 ‘증거 부족’이라는 결론은, 권력이 범죄의 가장 강력한 방패로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것은 수사 역량의 물리적 한계라기보다, 엘리트 네트워크가 서로의 치부를 가려주는 ‘상호 비호 카르텔’이 작동한 결과로, 법적 진실과 사회적 정의 사이에 회복 불가능한 균열을 남겼다.


시스템이 괴물을 키우는 세 가지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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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사건이 수십 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공통 원인은 명확하다.

첫째, 상업적 이해관계가 감시 기능을 거세했다.

일본의 방송사든, 영국의 공영방송이든, 광고 수익과 시청률, 그리고 권력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해자의 평판을 진실보다 우선시했다.

둘째, 명예훼손 소송이 무기가 되었다.

가해자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법적 위협을 가하며 언론과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았다.

셋째, 가장 취약한 이들이 타깃이 되었다.

미성년자, 연습생, 저소득층 등 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이들을 골라, 시스템의 사각지대로 몰아넣었다.

이들의 범죄는 개인의 병리적 일탈이 아닌, 명예를 중시하고 상업적 이익에 함몰된 시스템이 만들어낸 구조적 재앙이었다.


AI 시대: 더 교묘한 범죄? 더 투명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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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정보 비대칭과 권력 집중 구조는 양방향으로 진화한다.

AI는 딥페이크로 증거를 날조하고, 감시 기술로 내부 고발자를 선제 탄압하며, 추천 알고리즘으로 침묵을 설계하는 포식자의 도구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수백만 건의 거래와 통신을 분석해 범죄 패턴을 탐지하고, 변조 불가능한 증거 보존과 탐사 저널리즘의 민주화를 이끄는 투명성의 인프라도 될 수 있다.

세 사건의 본질은 기술의 부재가 아니라 거버넌스의 실패로, 기자도, 경찰도, FBI도 있었지만 작동시킬 의지가 없었다.

AI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기술의 성능이 아니라, 그 기술의 작동 버튼을 누가 쥐고 있느냐다.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의 창시자이자 현대 인공지능(AI)의 기초를 닦은 수학자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는 아래와 같은 경고를 남겼다.

The machine’s danger to society is not from the machine itself

기술에는 선과 악이 없지만, 그 기술을 둘러싼 선택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 AI시대를 맞이하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교훈이다.

SOC
배터리의 현재 충전 상태를 전체 용량 대비 백분율(%)로 나타낸 수치
정보 비대칭
거래 당사자 간에 보유한 정보의 양이나 질이 서로 달라 한쪽이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상황입니다.
인프라
서비스 운영에 필요한 서버, 네트워크, 데이터 센터 등의 기초 시설
딥페이크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특정 인물의 얼굴이나 목소리를 합성하여 실제처럼 만든 가짜 영상이나 음성물
거버넌스
특정 시스템이 올바르게 운영되도록 의사결정 과정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체계
SoC
SoC(System-on-a-Chip)는 CPU, GPU, 메모리 컨트롤러, 통신 모듈 등 시스템 동작에 필요한 핵심 기능을 하나의 칩에 통합한 반도체입니다. 스마트폰과 임베디드 기기에서 공간·전력·비용을 줄이기 위해 널리 사용됩니다.